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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사회적인 차원과 공동체적 삶! 정요석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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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신학』의 저자인 스탤린 그레츠와 로저 올슨은 신약 성경에 실존주의적 해석을 채택한 루돌프 불트만 (Rudolf Bultman, 1884-1976)에 대해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서 발견되는 내재성의 강조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되찾으려는 고상한 시도를 했다”라고 총평한다.

 

이런 시도 중에 ‘사유화된 신앙’이 발생했다고 다음처럼 비판한다. “그의 신학적 접근법은 복음 메시지에 대한 너무 좁은 이해와 함께 곧 너무 좁고, 사유화한 신앙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본래적 삶의 문제에서 그것도 매우 개인화된 모습의 인격적 결단이다. … 그의 실존주의적 강조는 기독교 신앙의 공동체적이며 사회적인 차원들을 제외시킬 위험이 있다. 그는 믿음이 신자의 삶에 미치는 외적 영향이나 신자들의 공동체적 삶에 대해서는 거의 강조하지 않았다. … 그의 실존주의적 방향성은 내향성을 키워 줌으로써 곧 복음의 사회적, 정치적 의미들을 간과하게 한다. … 마찬가지로 그의 저술들이 교회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가볍게 볼 수 없다. … 만족할 만한 교회론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150-151쪽).

개인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인 차원과 공동체적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세움교회는 그간 의약분업, 세 모녀의 자살사건, 일본 오염수 방류 등에 대해 주일 오후에 전문가를 모시고 강의를 듣고 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이런 관심과 시도를 하며 느낀 점은 성경이 말하는 여러 중요한 가치들을 각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겨 적용하는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극단적이고 수용력이 적은 사람일수록 한두 가지 가치에 매몰되어 모든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요사이 책을 발췌하며 책의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노라면 책과 화면을 수시로 교차하여 보게 되는데, 노안을 인하여 눈동자가 빠르게 책과 화면에 초점을 맞추지 못해 뿌옇게 보인다. 앞으로 내가 다양한 사회 현상들을 이렇게 뿌옇게 보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흐려지는 분별력과 치매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 몇 개와 인상적인 기억들에 머묾에서 오는 측면이 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말씀을 통해 깊고 넓게 교제하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필요하다. 이럴 때만 그간 켜켜이 쌓은 경험과 단상들이 지혜로 나타나지 그렇지 않으면 아집과 집착과 불통과 치매로 이어지리라! 그간 인생 경험으로 볼 때 신앙과 사고의 탄력성과 확장성에 산책과 운동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 이를 위해 오늘도 11시 수요예배와 교역자 회의 후 반드시 탁구를 쳐야 하겠다. 어떻게 된 게 나는 늘 기승전탁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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