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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정요석 20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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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역시 1993년도에 쓴 글입니다. 1996년 신학교 입학할 때 설교를 5분간 해야 하는데, 이 내용이 중심이 되어 했습니다. 전도사로 봉사하던 시절에도 이 내용을 중심으로 첫 설교를 했습니다. 신학을 하며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어거스틴도 "하나님의 두 도성"이라고 하여 이와 비슷한 내용을 책으로 남겼습니다. 깊이에는 물론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방향에 있어 같다니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몇 번의 보충을 거친 글로 2003년에 완성한 글입니다. 


제목: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영어제목: You can't go home again.

               향 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플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저는 이 시를 노래로 먼저 접했습니다. 성악가가 대중가수와 짝을 이루어 대중가요를 불렀다하여 화제가 된 향수라는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를 쉽게 대중가요라고 부르더라도, 대중가요가 종종 갖는 가벼움이나 천박성과는 먼 이미지로서 기억하여야 할 노래입니다. 정말로 박인수와 이동원의 서로 질이 다른 발성이 서로를 배격하지 않고, 달라서 더 조화롭고 변화가 있고 파격의 미가 있는 화음을 듣노라면 향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화음과 조화는 시의 깊이만치나 잊혀져가는 고향에 대한 아쉬움과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런 시를 모르고, 노래를 통해 겨우 알게 되었을까요?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정지용 시인은 월북작가로 규정되어 그 작품이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1902년에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시인들이 그의 소개와 격려를 통하여 훌륭한 시인으로 자랐고, 그의 시를 습작하며 시를 키워갔다고 합니다.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이 그에게 발굴되었고, 청록파(靑鹿派)라는 이름도 그가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이상도 발굴했고, 윤동주에게는 깊은 영향을 끼쳐, 윤동주는 존경심에 그가 다니던 대학으로 옮겨가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는 1930년대에 이미 언어를 잘 만져 그 심미적 가치를 잘 드러내는 "시인의 시인"이고, "현시단의 경이적 존재"라는 찬사를 들었습니다. 언어의 심미적 가치와 정서적 울림을 아는 최초의 현대시인이란 평을 들은 것이지요. 이런 찬사를 들은 시인이 198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해금이 되었으니, 그의 작품들은 지난 시절의 고향처럼 신비감속에서 읽혀졌습니다.

정시용 시인이 22살이 되는 1923년에 쓴 이 시를 읽고 나면 고향의 풍경이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듯 합니다.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짚벼개, 파아란 하늘 빛, 풀섭 이슬, 서리 까마귀,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 등의 단어들은 사라져가는 고향의 사물을 잘도 잡아냅니다. 참으로 한국적인 농촌의 풍경이지 않습니까? 아쉬움과 미련을 저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목가적인 고향의 사물과 경치의 나열만이 아니라, 그것들에 깃든 사람들의 삶도 잘 잡아냈습니다.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함부러 쏜 화살을 찾으러,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줏던 곳,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등의 표현이 우리네 가난한 농가의 그런저런 삶을 애잔하게 말해줍니다.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라는 표현에서는 지금의 도시의 부부와는 참 다른 느낌을 받으며, 하지만 실제로는 사철 발벗은 것만 틀릴 뿐 지금도 같이 살다보면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게 됨에 참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시인은 그런 아내가 이삭 줍던 곳을 차마 꿈엔들 잊을 수 있겠느냐고 쓰는 것을 보면, 아내가 결코 아무러치도 않은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젊은 남녀의 설레임은 없지만 일상으로 굳어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부부의 관계가 느겨집니다. 어쩌면 아내에게서 아무러치도 않음을 느끼야하는 부부의 관계가 슬퍼보이고, 그 아내는 사철 발벗은 채 이삭을 주우며 식민지 나라의 농촌 삶을 이겨내야 하기에 그 시절의 각박한 현실이 애달퍼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도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던 시절이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tv와 인터넷과 게임으로 각자 시간을 보내지만, 그 시절에는 분명 흐릿한 불빛에서 그리 재미있을 것도 없는 이야기를 두터운 정으로 잘도 보내곤 했습니다. 정이란 참 신기한 것입니다. 부부간의 정, 자녀들끼리의 정, 이웃들과의 정, 그것이 사람의 관계를 그 어떠한 돈이나 필요나 오락이나 자극 못지 않게 잘도 유지시킵니다. 전기가 들어와 밤에 사물이 잘 보일수록, 전기 없이 호롱불로 보내던 시절에 가족을 유대시키던 정은 더욱 안보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시를 읽고 감동을 받고 그 시절을 애잔하게 추억할 수 있음에, 고향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막차를 탄 듯한 행운을 느끼고, 이제 더 이상 그런 고향은 없다는 상실감을 느끼고, 이후의 세대와는 추억과 정서가 질적으로 틀리다는 단절감을 느낍니다. 제 아들도 이 시를 읽고 저처럼 감동을 받아 글로까지 쓰려고 할까요? 아니면 향수와 추억을 느끼기에는 너무 낯선 시대상이고 생경한 단어들일까요? 제 아들과 저는 최소한 이 면에서는 단절될 것입니다.
정지용 시인은 이 시를 1923년 22살의 나이에 썼습니다. 22살의 나이로 어떻게 아내를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로 표현할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그 나이면 지금보다 일찍 결혼하는 시대라 할지라도 아내를 이성에 대한 그리움과 심미안적 관점에서 볼텐데 말입니다. 그가 얼마나 현실과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찰이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지용 시인은 심오한 주제를 깊이 있는 성찰과 탐색으로 다루지는 않았고, 과거에 대한 회귀와 개인적 정서에 충실하여 역사의식이 결여된 자라는 평이 어느 정도는 맞겠지만, 최소한 그는 사람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 자이고,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어떠한 궤도를 밟으며 반복되는지는 관찰한 자입니다. 

저는 가끔 제가 일제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몸서리치게 다행으로 여깁니다. 나라를 빼앗긴 아픔과 설움에 항상 우울하게 살 것이 아닙니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강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일본 사람들을 보면 미움과 분노가 일 것이고, 목사이기에 그들을 또한 긍휼히 여기며 전도해야 하기에 양쪽의 조화되지 않는 감정에 곤혹스러워 할 것입니다. 정지용 시인이라고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시인이기에 더 섬세한 감정이라 얼마나 힘들까요? 그는 나라를 잃은 슬픔을 사라져가는 고향을 읊음으로 달랬는지 모릅니다.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고향은 바로 빼앗긴 나라가 되는 지도 모릅니다.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외치는 그에게 그 상실의 아픔은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역사의식은 꼭 그 대상을 읊어야 하거나 직접적으로 표현을 한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정지용은 직접적 언급과 사색적이라기 보다는 회화로 그리듯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더욱 가슴아프게 울었을 것입니다. <고향>이라는 그의 시를 하나 더 볼까요?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버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누가 이 시를 보고 단순히 과거지향적이고 개인적 정서에 충실했다고 비판하겠습니까? 누가 이 시를 고향의 추억과 그리움을 언어를 잘 다뤄 말했지만 역사의식이 없고 사상의 깊이가 없다고 규정하겠습니까? 제 눈에는 시인은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고 여러 의미에서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자기가 살던 그 시절 그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산꿩과 버꾹과 흰점 꽃은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들만 그대로일 뿐, 다른 것들은 다 변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고향은 존재하지만, 정서적 고향은 없어졌습니다. 그 고향은 시인이 살던 고향일 수 있고, 들마저 빼앗겨 봄마저 빼앗긴 나라일 수 있고, 사람이기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향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시인은 서정 속에 역사의식과 심오함도 담았습니다. 아마 비평가들은 역사의식을 강하게 내포한 시를 보고는 서정성이 결여되었다고 비판할 것이고, 역사의식과 서정성과 심오함을 모두 내포한 시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다 담으려다 아무 것도 담지 못한 시라고 비판할 것입니다. 그렇게 맘에 안들면 차라리 자기들이 시를 써서 보여줄 것이지 말입니다.

정지용 시인처럼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고 말한 소설가도 있습니다. 이문열은 아예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를 소설 제목으로 정해 놓고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차곡차곡 잘도 담아냈습니다. 그의 자전적 소설이기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추상이 아닌 손에 잡힐 듯 더욱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놓치기 아까운 그러한 구절들을 같이 감상해볼까요? "사라져 그리운 것들", "스러져 가야 할 것이기에 더 아름다운", "사라진 모든 것의 추억처럼 희미한 빛", "몰락하는 영광이 가지는 비장미", "현란하여 몽롱한 유년과 구름처럼 허망히 흘러가 버린 젊은 날의 꿈 속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이런 아름다운 문장이 점철된 그의 책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에게도 고향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겠지요. "세상의 지도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란 표현에 정작 가고 싶은 고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고향은, 사람이 돌리지 못하는 시간이라는 화살이고, 시대의 변화를 따라 변해버린 인정과 풍속과 품격이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하여 얻은 이름, 유토피아입니다.

그런데 이문열은 이 제목을 현대 미국 문단의 5대 작가라 일컫는 토마스 울프(Thomas Wolfe)의 "You can't go home again."이란 소설 작품에서 빌려왔습니다. 그가 스스로 고백하는 바와 같이 그의 문장 수업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긴 토마스 울프에게서, 제목만이 아니라 기본 내용과 정서까지 빌려왔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죠지는 십여 년만에 고향을 방문합니다. 하지만 고향은 이미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파괴되어 갔고, 인간성은 상실되어 꿈에 그리던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몸 담은 도시와 다를 바 없이 돈, 권력, 욕망에 찌들은 또 하나의 도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뿌리뽑힌 자들의 고독과 방황이 우울하게 그려진 이 소설도 역시 "진정으로 돌아갈 곳은 오직 기억속에만 존재할 뿐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기다리는 것은 없다"며, 사람이 진정 돌아갈 곳은 어디냐고 묻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들 고향을 말하는 이들은 시인이나 소설가나 모두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고 말을 할까요?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가슴 아프게 했던 일이나 설레게 했던 일도 추억이 되어버리고, 고향을 떠나게 했던 지긋지긋한 가난과 단조로움도 그 아픔은 잊은 채 미소지을 수 있는 그리움이 되고, 도시의 삭막함과 개인주의에 젖어 이것은 아닌데 할 때 즈음에 고향은 공동체적 정서의 도가니란 따스한 엄마와 가족의 품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고향은 항상 저 만치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이것은 물리적으로 시간을 되돌려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분명히 이러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시인과 소설가는 단지 개인적 정서의 함몰에 빠져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감상주의를 넘어서는 본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산업화라는 급격한 사회의 변화가 있기 전부터 사람들은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더딘 변화의 시대에 정서와 풍습이 변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고향의 상실을 말했습니다. 이들은 고향에 이상향을 담았고, 부조리한 이 땅을 대신할 낙원을 담았습니다. 이곳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가를 논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 울프 또한 소설 제목을 누군가에게 빌려왔음을 아십니까? 울프는 실명이란 비참한 역경을 승화한 죤 밀턴이 1667년에 발표한 서사시 <실락원(Paradise lost)>에서 빌려왔습니다. 밀턴은 이 작품에서 사탄에게 유혹당한 인간의 범죄와 그로 인한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을 그리며, 이 추방으로 인하여 인간은 더 이상 그들의 영원한 고향인 에덴 동산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자기 낙원인 고향을 잃어버린 영원한 실향민이 되어 부조리한 우주에 던져졌다는 것이지요. 밀턴이야말로 유년 시절의 고향에 대한 향수나 과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넘어서서 인간의 실존이란 면에서 고향을 말한 사람입니다. 어찌하여 사람이 고향을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그곳에 다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인용한 성경으로 가 볼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 3:22-24)

여호와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을 거기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강은 에덴에서 발원하였고,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습니다. 에덴을 인하여 동산의 주변과 저 너머도 유지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아담으로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에 나무와 강이라는 좋은 환경만을 설정한 것이 아니라, 아담 자체에게도 그 환경을 다스리고 지키고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신 각종 들짐승과 새를 아담은 한 번 보고 그 본질과 성격을 알고 이름을 지어줄 수 있기까지 했습니다. 완벽한 환경과 그에 걸맞는 능력의 소지자 아담이 더할 나위 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이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그만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를 짓고 맙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는 것은 단순히 과일 하나를 따먹는 것을 넘어서서, 명령하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 순간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본질적으로 끊어지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이 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쫓겨납니다. 에덴동산 동편에는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이 있어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은 폐쇄되었고, 인간은 쫓겨나면서 방황하고 유리하게 되었고 이제 더 이상 에덴 동산과 같은 환경은 만나지도 못하고, 거기에 거할 때 누렸던 능력도 잃어버렸습니다. 잉태하는 고통이 있어야 자식을 낳게 되고, 땅은 가심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얼굴에 땀을 흘러야 식물을 먹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동산을 적시고 멀리 흘러갔던 강도 변해버렸습니다.

쫓겨난 인간은 그 후 나름대로 에덴동산을 만들어 보려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에덴동산을 만들어 보려는 인간의 노력이 시작되자마자 일어난 일은 살인이었습니다. 그것도 친형이 친아우를 죽이는 살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영적 죽음은 이렇게 바로 실제적인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은 자기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을 당할 때, 타인에게도 끼칠 수 있지, 죽음을 모르는 자가 죽음을 연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벨을 죽인 가인이 다음으로 한 일이 성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 당시 성은 자체로 바로 도시와 읍이 되지 않겠습니까? 농사 짓던 가인이 살인 후 도시를 건설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큽니다. 고향의 가치를 모르는 자들이 하는 시도가 도시이고, 고향을 상실한 자들이 그 불안을 달래려고 만드는 것이 도시이고, 고향에서 쫓겨난 자들이 나름대로 그 고향을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도시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도시는 건축과 미술과 산업과 음악의 발달과 자취를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육축 치는 조상이 되었고,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고,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도시를 건설하는 건축술과 그것을 아름답게 꾸미는 미술의 발달은 도시 생활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자연히 따르는 결과입니다. 그러고 보면 산업과 건축과 미술과 음악은 고향의 상실과 회복에 이르는 길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고향을 상실한 자들로 대신 무언가에 심취하도록 만드는 것들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도시를 만들기도 하고, 바벨탑을 쌓기도 하며 나름대로 고향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에 따라 자연히 정치, 경제, 법, 문화, 과학기술도 자연히 발달되었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우리에게 진정한 고향을 가져다주었습니까? 그 이후로 등장하는 시인과 소설가들이 우리는 다시 고향을 찾았네라고 읊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고 읊고 있습니까? 달에 사람을 보내고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주 어디에도 고향은 없었고, 차디찬 물질 덩어리가 달과 화성처럼 우주 공간에 떠있을 뿐임을 확인했고, 인간 유전자 어디를 건들어도 에덴 동산의 아담과 같은 능력은 생기지 않음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생산력이 발달하여 사람의 본성마저도 바뀌어 서로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욕심과 싸움이 없어질 줄 알았지만, 21세기에 이르러도 부의 편재는 심화되고,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굶어죽어가고, 풍요를 즐기는 이들은 더욱 즐기려 경제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이 마저도 안되면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의학의 발달은 사람의 수명을 다소 연장했는지 모르지만 인간다운 수명은 오히려 줄어들어 노인의 고독과 소외는 더 심해져 많은 자살로 이어지고, 정복될 줄 알았던 세균들과 전염병은 여전히 사람을 정복하여 괴롭히고, 이 글을 쓰는 지금 항공망을 타고 전세계로 뻗어가는 괴질을 인해 전세계는 지금 여행의 금지를 권하고 있고, 그에 따라 경제도 자연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했다는데 지구의 자연환경은 오히려 악화되고, 전쟁은 한꺼번에 더 많은 사람들을 쉽게 죽이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발달된 사회과학의 산물이라는 UN의 역할은 21세기에 이르러 그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을 중재하지 못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도 괴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점점 전투지역은 넓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발명품이란 대개 우리의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 예쁘장한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목적은 개선하지 않고 방법만 개선하려 들기 때문이다"라는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지적에 점점 동의하게 됩니다. 아니, 인간의 노력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으면 다행일 것입니다. 과연 가인이 성을 만들던 시대보다 지금이 더 평화롭고 행복하고 살기 좋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편리해진 시대지만, 진정한 평안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학교로도 부족해 석사와 박사가 보편화된 지금, 과연 인생의 본질에 관하여 무엇을 배웠는지는 의문입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보다 우리의 가정이 화목해졌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우울한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면 정말 얼마나 우울하겠습니까?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탄식하며 울부짖는 정지용 시인의 아픔을 생각해 보십시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라며 상심에 빠진 그의 자포자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문열과 토마스 울프는 어떻습니까? "진정으로 돌아갈 곳은 오직 기억속에만 존재할 뿐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기다리는 것은 없다"라고 가슴이 시리게 끝을 맺는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 못을 박으며 책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고향의 상실을 언어를 잘 다루어 낭만스럽게 표현하여 멋이 있지만, 그 멋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문인이기에 갖는 예리함으로 느껴야만 하는 깊디 깊은 고독과 허무와 포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까?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4-15)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우리가 쫓겨났던 에덴 동산보다 더 좋은 나라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기에 하나님 나라이고,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기에 하나님 나라이고, 사람이 생각하고 만들 수 있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보다 훨씬, 요사이 하는 말로 업 그레이드된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하여 향상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이 순종할 때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했던 그 영화로워진 나라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진보가 없는 최종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표현으로 종종 "확장하자", "이루자", "넓히자" 등의 언급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동사로서 이런 단어는 없고, 모두 그것이 "온다"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주신다" 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와 "받을" 뿐입니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의 "확장하자", "이루자", "넓히자" 등의 단어는 일체 없습니다. 우리가 돌아갈, 돌아가야만 할 고향,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우리의 힘을 초월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거저, 수동적으로 주어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기다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에덴 동산에 들어갈 수 없기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오시되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높은 모습이 아니라, 사람과 같은 낮아짐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오셔서 우리 대신에 죽으시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을 때 죽어야 하는 사람의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게하시는 것입니다. 살게하시되 단순히 수명의 연장이 아니라 참된 앎과 참된 정서의 회복과 이루어감을 통하여 인생이 무엇이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즐기며 알게 하십니다. 어떠한 음악과 미술과 시를 통해서도 되지 않는 정서의 함양이 이루어지고 어떠한 철학과 과학을 통해서도 획득되지 않는 진리의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음악과 미술과 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셨습니다. 철학과 과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셨고, 정치 체제와 산업의 발달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간 사람이 시도한 모든 영역들은 그냥 지나치시고, 대신에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은혜가 무엇인지를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진짜 목적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기 위해서라고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것만이 오히려 음악과 미술과 시와 철학과 과학과 정치와 산업을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없는 이것들은 오히려 사람을 예민하게 하고 피폐하게 하고 틀린 유토피아이즘에 빠지게 하지만, 복음이 앞서면 이것들은 자연히 그 뒤를 좇아옵니다.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것들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였지만, 미처 우리가 늙어 죽기도 전에 그 고향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라고 이문열은 그의 책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과연 진정한 고향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일까요? 산업화와 그에 따른 사상이 보편화되기 전에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이 보냈기에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엄밀하게는 도시의 콘크리트도 거기서 자라난 이에게는 고향이 됩니다. 골목길의 편의점과 대형 마트의 편리함과 돈으로 골라 즐기는 여러 오락은 충분히 고향이 될 수 있습니다. 제 아들과 저는 분명히 고향에 대한 다른 추억과 다른 정서와 다른 단어를 가지겠지만,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고 추구한다는 공통점은 같을 것입니다. 최소한 이 면에서 단절은 없습니다. 진정한 고향은 모두가 가지고 모두가 그리워하고 모두가 애달퍼하기 마련입니다. 아직 어린 내 아들이라 제가 생각지도 못하는 현상들을 고향으로 느끼며 자라겠지만, 시대성이 갖는 낭만과 익숙함이란 요소들만 조금 빼버리면, 낙원에서 쫓긴 상실감과 그리움과 상처를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은혜로 고향을 거저 회복시켜주심을, 낭만보다 더 높은 정서인 감동으로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이러니 제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현실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본, 하지만 해결책은 도무지 제시하지 못한 이문열과 토마스 울프의 책을 더 이상 잡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그만 저 한 켠으로 밀어 놓으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의 통로가 기억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통로는 오직 그리스도이심을 자세히 가르쳐주는 성경을 새기고 새길렵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맛을 한번 본 자라면 그렇게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옵소서!"라고 저는 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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