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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될 수 없음과 개유불성: 19930326 작성 정요석 20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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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땐 절기마다 연극을 하고, 중학교땐 학생회에서 임원을 하고 수양회에도 빠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존재 유무에 대해 한 번 들기 시작한 의구심은 좀체로 사라지지 않았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고 나름대로 생각을 한 뒤 추려서 듣기 시작하는 사춘기가 되면서, 그간 아무 거부감없이 듣고 믿어왔던 전도사님의 말씀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꼬리를 물고 일기 시작한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자꾸 색안경을 쓰고 기독교를 바라보게 했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나의 맨처음 조상은? 저 광활한 우주는 끝이 있으며, 우주의 끝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이에 관한 기독교의 답은 그때의 나에게는 정말이지 너무 무책임한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태초가 어떻다는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만들었다고 시작되는 성경 첫 구절은 과정에 대한 설명은 뛰어넘고 결과만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완전하시다는 하나님이 왜 쓸데없이 선악과는 만들어서 아담과 하와로 죄를 짓게 하고, 아담이 지었다는 죄로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연좌제를 인정않는 현대법의 흐름에도 어긋나는 원시적인 개념으로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란 한 개인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음으로 모든 사람의 죄가 없어지고 바로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자기를 믿는 사람만 구원해주는 옹졸한 하나님만을 연상케 했다. 이스라엘이란 민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구약의 사건들도 단군신화와 별반 다르지 않게 자기 민족을 신성시하려는 동기에서 나온 유치한 민족설화일 뿐이었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고 죽은 뒤에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논리의 전개였다. 

수양회나 철야기도회 때 하나님을 외치며 기도하는 분들을 보며 정말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러는지 의아스러웠다. 정말로 믿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어쩌다 발을 디딘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큰 소리로 기도하니까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도 열심히 기도하는 척 하는 것인지 참으로 알고 싶었다. 

무엇엔가 도취한 듯 진지하게 중얼대는 모습을 보면 결코 가장(假裝)은 아닌 듯 하여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나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독교 신앙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기도를 진지하게 했다. 하지만 나의 가슴과 머리는 어떠한 반응도 느낄 수 없었다. 승낙받지 못할 내용인 줄 뻔히 알면서도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는 경우처럼 감정없이 드리는 나의 기도는 메아리처럼 다시 내게 돌아와 나의 머리를 울려 혼란에 빠지게 했다. 그럴수록 주위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은 TV에서 가끔 보는 사이비 종교에 미쳐 재산과 가족을 버린 광신자로 비칠 뿐이었다. 

중3 여름방학 수련회를 다녀와서 신앙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갔다. 그 나이의 조급성으로 무언가 결판을 내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손에 꽉 잡히는 확실한 것을 무엇이든 빨리 쥐고 싶었다. 잠 못 이루고 깊게 고민을 하던 그런 나에게 어느날 떠오른 사람은 학생회의 부흥을 위해 교회에서 홀로 철야기도를 하던 전도사님이었다. 결판을 내리란 생각으로 전도사님에게 찾아가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밑도 끝도 없이 품고 있던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경의 진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없이 어찌 논리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요? 그럼에도 당시의 나는 허점 투성이로 보일 수 밖에 없던 성경말씀에 대해 정연한 논리를 요구하며 집요하게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추궁을 했고 질책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안타까운 모습으로 열심히 질문에 답을 해주셨지만 너무나도 완고한 마지막 물음에는 전도사님도 질겁을 하고 마셨다. 


"사실은 전도사님도 하나님을 믿고 계신 것은 아니죠? 어쩌다 보니 교회를 다니게 됐고 그러다 전도사까지 되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믿는 척 하는 거죠? 거짓을 버리고 사실대로 한 번 말해보세요!" 

"......" 

"인간이 어떻게, 왜 태어났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고,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전도사님도 알지 못 하지만 홀로 해답을 알아가기에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냥 하나님을 믿기로 한거죠? 성경이 말하는 엉성한 답에 만족하기로 하고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기로 포기한 거죠?" 


전도사님은 어리다고 생각한 중3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충격받은 사람처럼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던 당시 나는 이미 허무주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무엇을 해야 할 곳인지, 죽은 뒤 어떻게 될 것인지 답을 모르던 나는 벌써 인생의 무목적을 느꼈고 그 해답이 웬만해서는 안 얻어질 것 같은 직감으로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나의 질문은 전도사님도 그런 불안이 싫어 하나님을 믿기로 한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나의 처절함이었다. 

계속되는 물음에도 아무 대답이 없자 마지막으로 비수같은 한 마디를 전도사님의 가슴에 꽂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저는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겠습니다. 비록 힘들지만 전도사님처럼 비겁하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려 답을 알아내고야 말겠습니다." 


꾸벅 절하고 일어서려는 나의 손을 전도사님은 꼬옥 잡고 안타까이 나를 바라보셨다. 왠만큼 달래는 말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저만치 가버린 나임을 느끼셨는지 전도사님에게선 논쟁을 하려는 이지(理智)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맡은 한 양을 바로 눈 앞에서 잃어가고 있으면서도 어찌 해 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에 마음 아프고, 이 양이 앞으로 지난(至難)한 길을 걸어갈 확실한 사실에 안타까웠는지 전도사님의 눈은 이미 눈물로 가득했다. 떨리는 음성으로 간곡하게 겨우 끝을 맺은 말은, 


"그래도 나는 믿으며, 요석이도 지금은 아니지만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올 것을 확신하며, 그런 날이 빨리오도록 너를 위해 계속 기도......" 


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찬 그 음성에 내 마음도 아팠고, 인간적으론 나도 좋아하는 전도사님이기에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굳은 의지는 어설픈 타협을 용납하지 않았다. '여기서 굴복하면 나도 진리를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어정쩡한 그리스도인이 돼버리는 거야. 나는 그런 약한 사람이 되어선 안돼. 참된 진리를 위해 과감히 일어서야 해.' 

놓으면 내가 낭떠러지에라도 떨어지는 듯 전도사님은 내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꽉 쥔 손은 이미 눈물로 젖어있었고, 나는 그런 전도사님의 손을 뿌리치고 정적으로 휩싸인 교회를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안개에 묻혀 더욱 깊어진 밤이 세상을 감싸고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안개 속의 나를 품고 있는 지구가 한 점 먼지에 지나지 않는 듯 우주는 너무나 광활하게 느껴졌다. 그 우주를 탐험하고 있는 무인 우주선의 모습을 상상하니 신비로움과 함께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하는 생각이 가슴을 찔러왔다. 남극의 만년설도 심히 외로우리라?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선포한 뒤 맞이한 첫주일 날. 수련회 때 강사님이 들려주셨던 교회를 다니다 그만 둔 사람들의 참혹한 사례가 기억이 나 멀리서 오는 자동차만 봐도 겁이 났다. 그 때마다 여기서 용기를 잃고 타협하여 교회에 다시 나가서는 안 되지 하며 굳게 마음을 다져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기독교를 설화적인 차원에서 인과응보적인 면으로 파악하여 사랑과 거룩의 하나님보다는 포상과 징벌의 단순한 하나님으로 더 많이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구도(求道)의 길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데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 기간 동안 나에게서 하루도, 일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닌 것은 허무, 무목적, 상대주의 등. 

결국 인간은 죽어버리는데 무엇이 가치있단 말인가? 사람이 좋다고 여기는 것 모두는 사람이 좋다고 여기기로 했으니까 좋은 것이지 않는가? 왜 좋은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좋을 것도 없었다. 선악도 인간이 정해놓은 약속에 지나지 않았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는 것은 죽음이었고 그래서 허무뿐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다 얼핏 일몰을 보기만 해도,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저 아이도 늙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만 해도, 한창 파티가 무르익을 때 파티가 결국에는 파해 사람은 쓸쓸이 흩어지고 끝내는 모두 죽으리란 생각이 미치기만 해도 나는 가슴이 시리고 아려왔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허무. 이것은 마음 한 구석이 도려지는 듯했다. 피부를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듯했고, 뼈를 깎는 듯했다. 나에게 찾아들 때마다 나는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한 순간 앓아야만 했다. 

매순간 찾아오는 이런 고통은 나에게만 있는 것인지 답답하여 주위 친구에게 물어봤다. 일찍 시작된 나의 사춘기가 죄였는지, 친구들은 나를 이상스레 쳐다봤다.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여쭤봐도 고개만을 끄덕일 뿐 신통한 대답은 돌아오질 않았다. "그런 고민은 커서 대학가서 해도 충분하고 지금은 공부나 열심히 해!" 하면서 나를 무척 피곤해 했다. 어른들은 이런 고민을 하는 학생을 애들스럽지 않다고 느껴서 그런지 부담스러워 하고 좋아하지 않았다. 

공부와 애들스러움을 강조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며, 돈과 명예에 혈안이 되어있는 듯했던 어른들을 보며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어른들의 상당수는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들에 대해 한 때 고민들을 해 봤지만 풀리지를 않자 곧 포기해버렸다. 그 대신에 이미 정해져 있는 가치들을 받아들여 돈과 명예에 집착하기로 했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질문들을 하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출구없는 방에 갇힌 나는 출구를 찾아 몸부림쳤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말씀을 경청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얻어지는 것은 허무의 새로운 모습들의 발견이었다. 전엔 허무를 느끼지 못하던 것에서조차 허무를 느끼게 되었다. 독서는 허무만들기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철학과 문학에 관해 쓰여진 상당수의 책은 교묘하게 인생의 근본 물음을 피해갔다. 특별한 설명없이 논리의 출발점이 놓여 있었다. 출발점 이후의 논리는 그지없이 정연했지만, 이것은 수학 집합론에서처럼 가정(假定)이 틀렸기 때문에 결론은 어떠해도 참이 되는 합성명제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사랑했던 학문, 수학! 여기엔 원인과 결과가 항상 존재하였다. "왜?"라는 질문이 항상 통하여 답이 존재하였다. 한치의 틀림도 허용하지 않았고, 간결했고, 깨끗했다. 독일 수학자 Cantor가 "수학의 본질은 그 자유에 있다. 수학적인 개념은 정확한 정의에 의하여 도입된 개념이 단지 무모순이어야 한다는 것에 의하여만 제약을 받는다."고 말한 것처럼 자유스럽고 무한하였다. 나는 허무에 지쳐 삶이 힘겨울 때마다 수학 참고서 "정석" 책을 펴 놓고 어려운 연습문제와 씨름하곤 했다. 

하지만 수학에도 공리(公理:하나의 과학적 이론 체계의 기초로서 바르다고 가정되는 명제)는 존재하였다. 정의(定義:어떤 개념의 뜻을 확정하여 명백하게 밝힌 뜻)를 만들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공리들! 수학도 인간의 직관을 부분적으로 인정해야 했고, 맨처음 출발점은 그냥 받아들임이었다. 또 수학을 몇시간 공부한 뒤엔 배가 고파 밥을 먹어야 했고 잠을 자야했다. 수학은 나를 이끌어 어떤 초월의 곳으로 인도하지 못했다. 수학은 단지 수학일뿐이었다. 17세기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인 천재 파스칼이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 없다며(팡세 77) "무익하고 불확실한 데카르트"(팡세 78)라고 규정했듯이, 세상의 학문들은 최소한 인생의 근본진리를 아는 데 있어선 "무익하고 불확실"했다. 


갈매기 조나단! 


그런 갈매기가 인간 사회에도 존재했다. 파르르하게 깎은 머리만치나 진지하게 보였던 스님들! 인생 물음에 대한 해답을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달려들어 정진하는 스님들! 어떤 미련이 있는지 세상에 남아있는 나와 달리 오직 도를 깨우치기 위해 출가한 그 분들은 나에게는 인간 조나단으로 보였다. 

불교에 들어서 인생의 근본물음을 탐구하자마자 그간 내가 깊이 고민하며 느끼고 있던 바를 간결하게 표현한 문구를 만날 수 있었다. 인생의 현상과 본질에 대한 불교의 총체적인 입장을 말한 것으로 "3법인"(三法印)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불법 중의 부동의 근본원칙으로 다른 종교나 학설과 구분시키는 분수령이라고 하여 인감(印鑑)에 비유해서 "3법인"이라고 부른다. 

첫째는 제행무상(諸行無常)으로 모든 것(諸行)이 상(常)하지 않고 변한다는 것이다. 세간의 모든 현상은 항상 변화해서 고요히 상주하거나 영원불변한 사물이 없다. 인간도 태어나서(生), 늙고(老), 병들고(病), 죽게(死) 마련이다. 

둘째는 제법무아(諸法無我)로 法은 사물, 물건, 존재를 뜻하고, 我는 주재와 실체의 뜻을 갖는다. 我는 이합집산이 없으며 변화생멸이 없는 실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諸法無我가 의미하는 바는 세상에는 단일하고 독립적이며 자아결정적인 영원한 사물은 없으며, 모든 사물은 모두 인연의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상대적이고 임시적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일체개고(一切皆苦)로 위의 두 항목이 성립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생에서 즐겁다고 하는 일도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無常한 곳엔 즐거움이란 있을 수 없고 단지 불안과 공허함만 있을 뿐이다. 

이 얼마나 정확한 말인가! 그간 내가 고민한 바를 간결하게 요약한 그 표현에 나는 올바른 곳을 찾아왔구나 하는 안도감과 기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수학의 정의(定義)처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표현된 불교의 현실인식은 나와 같았고 그 간결함 속에는 내가 보지 못하던 부분까지 있었고, 사고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출발점이 이처럼 나와 같을진대 해결점이 또한 바로 저기에 있지 않고 어디에 있으리요! 

많은 시간과 정열을 불교교리에 바쳤다. 스님들을 찾아 법문도 열심히 들었다. 이곳에 진리가 있고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는 확신에 수계(授戒)를 받았다. 수계는 기독교의 세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부처에게 귀의(歸依)하여 부처가 주는 계(戒)를 받아 제대로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하는 의식이다. 

천주교에서 영성체 후 세례명을 받듯이, 수계를 받은 후 "현각(玄覺)"이란 법명(法名)도 받았다. 玄은 다지 검다는 뜻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늘의 신비로움, 경이로움, 광활함을 뜻한다. 천자문에 처음 나오는 구절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天은 玄하고 地는 黃하다 할 때의 玄의 의미이다. 불교는 이에 더하여 진리란 뜻까지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법명 玄覺은 진리를 깨달으란 뜻이 된다. 불교에 귀의한 나의 의도를 부처께서 알고 축하라도 하듯 법명마저도 현각이니 이것은 필시 우연이 아니라 강한 인연이 있음에 틀림없다며 엄숙한 흥분에 떨었다. 

진리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희망에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조금만 더 하면 진리를 바로 잡을 수 있을 듯했다. 경전을 읽고, 만번의 절을 하고, 참선을 했다. 철야정진도 했다. 스님에게 화두(話頭, 깨달음을 얻기 위해 드는 간단한 문구로 예를 들면 山水水山 山山水水와 같은 것이다.)를 받아 온 종일 내내 며칠씩 화두를 푸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났다. 하지만 바로 손에 잡힐 듯 하던 진리는 여전히 손에 잡히질 않고 오히려 점점 멀어져가는 듯했다. 혹시 불교도 가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인 안정감이 불안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진리는 존재하며, 사람은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나하는 의문이 꿈틀꿈틀 떠올랐다. 불교란 종교는 현상에 대한 인식은 정확한 듯했지만, 현상을 어떻게 극복하여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선 명확하지 않은 듯했다. 내내 현실의 적나라한 인식만을 되풀이하는 듯했다. 이번 생(生)에 도를 못 깨달으면 다음 생에서 깨달을 때까지 윤회설을 믿고 마냥 느긋하게 기다리기엔 여전히 나를 엄습하여 파고드는 허무감은 너무 강렬했다. 

적지 않이 실망하여 의기소침해 있던 때에 크게 위안이 되는 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개유불성(皆有佛成)이었다. 이것의 뜻은 불성(佛性)이 성불(成佛)의 원인, 근거, 가능성을 뜻하여,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一切衆生 皆當作佛)는 것이다. 깨끗한 거울이 먼지와 때로 더러워져 볼 수 없지만 깨끗이 닦으면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도 자기를 열심히 닦으면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는 근본적인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불성이 욕심과 무명(無明)으로 더러워져 지금은 부처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열심히 수도를 하여 더러움을 닦아내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성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불교 신도들은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성불하세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서로 간에 최대의 축복의 말이 "성불하세요"였다. 이 간단한 인사 한 마디에 불교의 핵심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도 이 말에 용기를 얻어 여러모로 수도를 하였다. 더욱 경전을 읽고, 수천번의 절을 하고, 참선을 했다. 계를 지키고 선을 해 보았다. 

그렇게 또 일,이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수도를 하면 할수록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인생의 무상함뿐이었다. 살을 도려내는 허무는 수도 기간과 질에 비례하여 너비와 깊이만 커질 뿐이었다. 차라리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인식으로 나 자신을 학대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의도적인 무인식과 무관심으로 허무의 해방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치열한 허무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봄날 따스한 햇볕에서 소꼽놀이하는 그런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1980년 열악한 정치,민주 상황의 노도에 한 때 휩쓸리기도 하였다. 인생이 무엇이고 내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비하(卑下)한 운동권의 논리에 한 때 지친 몸과 정신이 시류의 흐름에 본의아니게 피신하게 되었다. 그들의 형이상학에 대한 생각은 민중으로 하여금 계급이란 인식을 갖고 사회구조를 바라보지 않도록 사회의 기득권자가 의도적으로 만든 몹쓸 철학형태라는 것이었다. 형이상학은 관념적인 내용을 말장난으로 부풀려 자기연민 속에서 개인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갖도록 하여, 기득권자에게 편리한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관심과 신경을 쓰지 않도록 기득권자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형이상학이 정말로 그런지 안그런지는 몰라도 형이상학을 비판하며 운동권이 진화론에 입각하여 제안한 변증법 역시 상대주의이고, 더구나 인간의 전체적인 면을 보지 않아 가장 중요한 핵심이 빠진 멋이 없는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었다. 키스를 "두 쌍의 입술이 맞닿아서 서로의 병균과 탄산가스를 전해주는 것"이라고 변증법을 받아들인 자들은 정의하였다. 나는 변증법의 한계를 깨닫는데 또 2년여의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佛性! 이것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여 나는 인간(人)이 아닌(弗) 부처(佛)가 될 수 있는가? 


모든 논리에 염증을 느끼며 그렇다고 죽음이란 허무를 극복하지도 못한채 그럭저럭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취직을 했다. 어머니의 사랑이 허무에 찌든 중,고등학교의 나를 그나마 보호해줬다면, 대학 졸업후의 나는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따스한 관심과 애정으로 인생의 무의미에서 보호해줬다. 여자 친구를 만나도 허무는 여전히 독성(毒性)을 잃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래도 희열은 아니지만 여자란 아늑한 숲에서 편암함을 맛 볼 수 있었다. 

그런 여자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내곁을 떠나버렸다. 허무에 익숙한 나인지라 헤어짐이란 것을 관찰하며 헤어질 수 있었지만, 그래도 정든 여자친구와의 이별은 슬펐다. 슬픔은 촉매제가 되어 허무란 놈으로 더욱 기승을 부리도록 했다. 이별로 인해 붉은 석양빛으로 채색된 허무는 더덕더덕 어디에나 붙어 있다가 나의 눈길이 갈 때마다 푸석푸석 떨어져 사방으로 퍼져 나의 숨을 막히게 했다.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지고 늦은 가을만이 남겨진 별리(別離)의 뒤안길에는, 허무에 절여진 내가 어찌할 줄 몰라 공기의 입자에도 치여 이리저리 내뒹길고 있었다. 

그와의 헤어짐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가 머물던 아름다운 나라 스위스로 슬픈 여행을 하였다. 첫 비행이 오랜 여자친구와의 헤어짐이라니! 비행기가 날아가는 궤적 모두가 슬프고 시리기만 하였다. 그 때만 해도 알래스카 공항을 경유해야만 했던 시절이다. 화장실에 있는 한글 낙서도 나를 모든 만물과 섞이지 않는 타인이라고 규정하는 듯만 하여 왜 이리 낯설었는지...... 공항 창문 너머로 보이는 눈의 하얀색은 왜 이리도 무한한 우주 공간의 절대침묵과 외로움으로 다가왔는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 우리의 헤어짐이 확정되고 그렇게 멍하게 스위스에서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접어든 기독서적 한 권이 별안간에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알고 싶은 충동이 일게 하였다. 가슴이 뜨거워졌고 중학교 때 배운 찬양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때마침 우연하게 만난 40대 중년의 집사님은 나의 별리(別離)의 아픔을 위로하며, 하나님을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줬고 하나님 말씀을 입을 통해 전해줬다. 수많은 기독교서적을 소개해줬다. 

정확한 이유도 모르게 자꾸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살펴보며 내가 허무에 그간 지칠대로 지쳤고 거기에 이별이란 놈이 겹쳐서 그런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이유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해선 안된다고 다짐하며 나의 비정한 논리와 마지막으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논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명확히 관찰한 후 인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나의 가슴은 자꾸만 달아올랐다. 울컥, 울컥 가슴이 올라왔고 하나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두 주먹에 힘이 갔다. 찬양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싶었고 마땅히 기도할 내용이 없으면서도 두손 모으고 기도하고 싶었다.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지라도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되고 싶었다. 단지 나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찬양을 부르고 싶고 기도하고 싶다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그간 나의 고군분투에 대한 올바른 대접이 아니었다. 얼마나 오랫 동안 허무에 시달렸고 이 놈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황들을 해 왔는가? 이렇게 맥없이 굴복하기엔 그간의 시련이 억울했고 그간의 노력이 아까왔다. 내가 인정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발견하지 않고서는 인정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가슴은 자꾸 뜨거워졌고 찬양하고 싶었지만 이성으로 강하게 억눌렀다. 한편으로는 기독교서적을 뒤져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린 신앙간증집을 찾아 세세히 읽으며 비교 분석했다.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믿고, 그것을 어떻게 믿어가게 된 것인지 철저히 추적했다. 또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상기해 내어 미세한 순간까지도 하나씩 짚어나가며 변화의 과정과 원인을 따져나갔다. 

하지만 그 어떤 책에도 질서정연한 순서와 논리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과정은 묘사되지 않았다. 하나님을 알기까지는 숱한 고생과 방황을 했어도 실제로 하나님을 아는 순간은 찰나였고, 특별한 이유가 없이 믿어버리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비논리적인 말들로 전혀 믿을 수 없었던 성경 말씀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여 마음을 휘저어 그냥 믿어지는 말씀으로 다가와버려 모두들 믿게 되버린 것이었다. 


논리! 논리를 외쳤지만 하나님을 아는데는 논리가 필요없었던 것이다. 

믿음은 논리를 초월하여 존재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논리로 이해하기엔 너무 큰 분이었고, 깊은 분이었다. 논리로는 하나님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아시고 하나님은 친절히 믿음이란 선물을 우리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논리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구속하심을 믿고 나서 그 후에 성경말씀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성난 파도와 같이 밀려드는 믿음의 물결에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당신은 주(主)이십니다.! 당신은 논리를 넘어서 계신 분입니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한번 터진 마음의 둑은 걷잡을 수 없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다. 무엇이 그리 감사했던지 마냥 감사하다고 말씀을 아뢰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어 공중으로 쭉 뻗어 내둘렀다. 고개를 좌우로 힘차게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 한번은 하나님께 성을 냈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파스칼은 "신이 없는 인간의 비참함과 신이 있는 인간의 축복"을 증명하려고 그리스도교 변증론(辨證論)인 "사상"이란 뜻의 "팡세"를 썼다. 저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한 인간의 영혼의 울림으로 가득찬 내적 독백이자 절규라고 일컫는 "팡세" 또한 오직 하나님의 불러주심만이 유일한 길임을 규정하고 있다. 


"아! 인간들이여, 너의 비참함을 치료하는 방법을 네 자신 속에서 찾는 것은 헛일이다. 너의 모든 지식은 네 자신 속에서는 진리도 행복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그것을 너에게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은 너의 참된 행복이 무엇이며 너의 참된 상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저들도 알지 못하는 너의 불행의 치료 법을 어떻게 너에게 제공할 수 있겠는가?......만일 당신이 신과 결합되어 있다면, 그것은 신의 은혜에 의한 것이지 당신의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겸손해졌다면 그것은 회개에 의한 것이지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다.(팡세 430)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신을 구하고, 끝까지 자연 속에 머물러 있는 자는 자기를 만족시키는 빛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든가, 혹은 중개자없이 그를 알고 신을 받드는 수단을 자기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든가, 그 어느 쪽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신론 아니면 이신론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이 두 가지 주장을 거의 똑같이 혐오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팡세 556) 

"철학의 신도 아니요, 과학의 신도 아니요, 수학자의 신도 아니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었다. 내가 신을 찾을 때 신은 숨어버리시더니 내가 그 앞에 엎드릴 때 신은 나를 품어 주셨다. 찬양할지어다!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의 변화가 일기 시작하며 조금씩 찾아든 평안이란 것이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자 아예 내마음 가득히 점령해와 향내를 잔뜩 풍기고 있었다. 이유없이 평화스러웠다. 평안은 허무가 푹 패어간 자국을 메꿔버렸다. 그리고도 모자라 나의 얼굴까지 넘쳐 흘러 평안의 빛을 주위에 선사하도록 했다. 그리 가진 재산도 없는 나였건만 마음은 꽉 차 모든 것을 소유한 듯 했다. 

그렇다고 내가 궁금해 했던 질문의 답을 모두 알았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맨처음 태초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며, 저 먼 끝 우주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으로 인해 괴로와하지 않는다. 궁금하지도 않으며 알고 싶지도 않다. 물론 마음도 전혀 허전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들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전혀 중요했던 것이 아니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물음들은 사탄이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이 하나님에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만든 몹쓸 철학형태였던 것이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안하느냐이었지, 태초는 어떠했을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가졌던 물음들은 세세한 설명을 엊지 못했음에도 완벽하게 해결되었다.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 나를 처참히 괴롭혔던 허무! 성경도 하나님이 없는 세상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2,14). 사도 바울은 그러한 허무마저도 인간의 뜻으로 선택하여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니라."(롬 8:20). 그리고 이어서 사도 바울은 피조물의 바람은 필자의 경우와 같이 쓸데없는 물음의 해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데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안다."(롬 8:21,22) 


이렇게 탄식하며 고통하는 우리를 차마 못보시고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내주셨다. 오직 이 길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기에 주저하지 않으시고 대속물(代贖物)로 내주신 것이다. 이처럼 세심히 가장 쉬운 길로 예정하신 하나님의 길을 모르고 길이 어디있느냐고 여쭤봤던 필자와 같이 어리석었던 도마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진리이신 예수님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 12:3). 결코 인간의 힘으로 진리를 얻을 수 없다. 개유불성(皆有佛性)이 아니라 "스스로 될 수 없음"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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